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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봄 2020_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본문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여 3편을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된 시리즈이다.
이 책의 매력은 짧은 단행본과 저렴한 가격뿐만이 아니라 소설을 쓴 작가의 인터뷰까지 들어가 있어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쓰기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소설 보다 봄 2020에는 김혜진 작가의 '3구역, 1구역', 장류진 작가의 '펀펀 페스티벌',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
이렇게 총 3편과 각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소설 보다>시리즈는 올해 한정으로 판매되는 책이니 얼른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보자.
3구역, 1구역_김혜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들을 네가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너에 대한 내감정이 호감이든 관심이든, 그게 뭐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켜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
이 이야기는 재개발 지역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길고양이인 태비를 통해 만나게 된 두 남녀가 서로의 이야기에 신경 쓰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작품 속의 남자는 여자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여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 하지만 여자가 잡는 약속에 계속해서 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여자는 고양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선의를 보이지만 재개발 사업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남자와 모순된 여자가 만나 진행되는 '3구역, 1구역'은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아성찰과 같은 깊은 고심에 들게 한다.
한 사람 안에는 선과 악이 혼재돼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인터뷰_김혜진
펀펀 페스티벌_장류진
마치 그애를 보고 있는 동안은 무언가 좋은 것이 내 주머니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는 듯이. 그래서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필사적으로 주워 담으려는 듯이.
솔직히 여기 간절하지 않은 사람 없잖아요. 다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신 거잖아요.
사회생활이라는 게 늘 합당한 근거나 논리적인 이해관계에 의거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며 능력이나 역량의 객관적 판단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내 '쪼'대로 2절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조금만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위 질문에 공감할 것이다. 나는 못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본인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대가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조별 공연을 할 때 만났던 남자를 5년 뒤 송년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며 그 남자와 주인공이 대비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남자는 위에서 던진 질문의 표본이다. 부끄러움 없이 허세를 떨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뿜어낸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런 남자를 "좀처럼 볼 수 없는 껍데기"라 부르면서 부러워하고 본인도 그 남자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읽는 나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고 새로운 형태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잘못한 건 남 탓, 잘한 건 내 덕분. 못 나가는 건 네가 해, 잘 나가는 건 다 내 거. [...]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는 아닐 것 같다는 예감. 비단 승진의 문제뿐 아니라 조직 생활,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그런 식의 엉뚱한 원리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_장류진
오늘의 일기예보_한정현
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제발 그 어쩔 수 없음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날이 갈수록 그런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아사코가 그 말을 듣고 그러잖아. 더럽다고, 그런데 그렇기 대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고.
정치에 관심 있는 것이요? 그런데 이거 이제 일상 아닐까요. 저기에 시위가 나면 차가 막힌 달지. 이제 무관심한 게 더 대단한 것 아닐까요?
한정현 작가는 '보나'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정치적 사건을 '일기예보'라는 일상적인 단어로 비유하였다. 이 소설은 일상 속에 녹아든 정치를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일상 속에 녹아든 정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나와 고모가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라든지 이 소설의 장면 장면마다 한정현 작가는 일상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있다. 이것이 "무관심이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일상 속에 녹아든 정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서 굳이 비판적으로도 보지 않고 그저 생활 중 불편하거나 신경 쓰이는 정도로만 독자들에게 표현하고 있다.
네, 저는 그렇게 믿어요.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고 사랑과 혁명. 어쩌면 조금 간절히요.
폭력에 대한 근원을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하는 순간 배제되는 무언가가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것이란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인터뷰_한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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