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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잔잔할 것만 같았던_쇼코의 미소_최은영

오루다 2020. 7. 26. 21:41

쇼코의 미소_최은영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로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해에 같은 작품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신인 소설가로 다가갔다.

 

'쇼코의 미소'는 불완전한 존재의 연속이다. 물론 불완전한 존재가 없는 소설은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은 굉장히 낯설고 곧 부서질 것 같은 존재를 등장시켜 읽는 독자에게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준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저릿한 감정은 마치 마약처럼 우리가 이 소설에 더욱 빠질 수 있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또한 최은영 작가가 전개시키는 어투도 굉장히 담백하다고 느껴져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러한 '쇼코의 미소'는 단편소설이므로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단편 소설에서 조금의 내용이 누설되면 그것은 스포니까)

 

그래서 나는 '쇼코의 미소'에서 최은영 작가의 특징이 드러난 문장과 내가 좋게 느꼈던 문장들을 나열하며 짧은소개를 끝마치겠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이십대는 어느 때보다 치열해야 할 시기였고, 여기서 치열함이란 죽기 살기로 빠른 시간 내에 안전한 경력을 쌓는 것을 의미했다.

-쇼코의 미소-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까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씬짜오, 씬짜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새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우리는 예의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손을 똈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나이에 걸맞는 옥솨 표정을 걸치고서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아주 가끔씩, 지금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될 거야.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시간을. 그 시간 속의 너와 나를 기억할 거야.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키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한지와 영주-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미카엘라-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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