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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a
오리털파카신 신이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인간은 오리털 파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 이라고 시인은 쓴다 이따금 오리털이 삐져나오면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 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죽었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떴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의 숨통이 끊겼다 오리털 하나가 뽑혔다 그 사람이 사라졌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천사와 악마도 없고 단지 한 가닥의 오리털이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앉는다, 고 시인은 썼다
얼굴의 물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 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 비는 믿음이 가고 모든 맥락을 끊고 있어서 좋다고 그는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므로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
동거 내가 태어났는데 어쩌다 너도 태어났다. 하나에서 둘. 우리는 비좁은 유모차에 구겨 앉는다. 우리는 같은 고복을, 남자를, 방을 쓴다. 언니, 의사 선생님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그러니까 언니, 나 이제 너라고 부를래. 사랑하니까 너라고 부를래. 사실 너 같은 건 언니도 아니지. 동생은 식칼로 사과를 깎으면서 말한다. 마지막 사과니까 남기면 죽어. 동생은 나를 향해 식칼을 들고, 사과를 깎는다. 바득바득 사과를 먹는다. 나는 동생의 팔목을 대신 그어 준다. 넌 배 속에 있을 때 무덤처럼 잠만 잤대. 한 번 더 동생의 팔목을 그었다. 자장자장. 넌 잘 때가 제일 예뻐. 동생을 뒤집어 놓고 재운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고 재운다. 비좁다 비좁다 밤이. 하나에서 둘. 하나에서 둘.
알코올 아버지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때, 아버지가 "다음부터는"이라고 말할 때, 여섯 살 때, 무심코 밟힌 얼굴이 아직도 장롱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찾고 싶어, 장롱을 열면, 나는 오줌처럼 축축한 코 나는 주전자를 쏟고 길 잃어버리고 물구나무서고 장롱을 닫으면 몸통부터 튀어나오는 용수철 같은 아버지 장롱의 입은 다물어라 장롱의 귀는 벽이 되어라 장롱의 눈은 최대한 커다랗게 감아라 장롱에서 자궁처럼 꺼내어진 나는 탯줄을 끊을 때처럼 스타카토의 폭력에 익숙해지고 나는 나를 철창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는 나를 계단에서 굴러 떨어뜨리고 덜컥덜컥 떨어져 있지만 붙어 있는 입술로 덕지덕지 이마 옆의 귀 앞의 코를 붙이며 아버지의 방법으로 방법적인 아버지로 아버지처럼 "무지해서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법에 익..
공동체 자살은 국가에 반역하는 과오라는 말을 부정하며 주카이에게 갔다. 주카이는 내게 죽음처럼 생긴 모자를 건넸다. 혼자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나를 꺼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죽고 싶어, 주카이, 나는 마술사의 모자처럼 모자라지 않으면서 모자란 사람이니까, 사람들은 늘 내가 보는 앞에서 떠나가, 그대마다 이미 죽은 생각은 무릎을 웅크리며 "그런데 무덤은 왜 공동체처럼 몰려 있는 거지?" 죽어서도 국가를 만드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잡초처럼 뽑힌 기분이야, 주카이 공동체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무덤은 나를 꺼내려하고 개인의 자격으로 나는 무덤 같은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정말 죽고 싶었는데, 망각이 위로가 되는 곳에서도 나의 우울은 2센티나 자랐지, 온몸이 붓지 않을 정도로만 실패한 나는 네 이름을 ..